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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 Stream
윤도현밴드(YB)
2003

by 이석원

2003.08.01

1996년 무명의 윤도현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정글 스토리〉의 음악을 담당했던 신해철은 앨범의 'Special thanks to' 난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앞으로 크게 될 윤도현”이라고. 7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 말은 사실이 되었다. 2003년 현재, 이미 한국 록의 정통성을 확보한 윤도현 밴드는 그룹 넥스트의 주류 대권을 가볍게 접수했고, 나아가 월드컵 열풍을 타고 국민밴드로까지 치솟았다. 그것은 배고픈 록이 상상할 수 있는 바람직한 성공담 그 자체였다.

그러나 너무 큰 성공은 오히려 부담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을 알아왔던 팬들은 높아진 밴드의 위상에 변질의 위험을 경계하는 모종의 불안감을 느꼈다. 뜨거웠던 6월 이후의 매니아들은 '오! 필승 코리아'만이 윤도현 밴드의 전부인 것처럼 열광했다. 분명 붉은 물결은 너무 많은 것을 쓸어가 버렸다. 그룹의 어두운 날들뿐 아니라 록 밴드로서의 자랑스런 정체성까지도. 그것은 불합리한 일이었다.

이처럼, 당당한 행보와는 무관하게 내외의 불순한 압박에 시달리던 윤도현 밴드는 결국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새 앨범은 어설픈 우려를 불식시키고 높아진 기대를 충족시키는 통렬한 스트레이트 펀치다. 밴드(윤밴)에 악센트를 두며 강력한 록으로 회귀하고, 또 한번 새로운 물결(Stream)을 이뤄내려는 자신감으로 열정적인 P세대들을 선동한다. 록의 본질과 갈등하는 거대한 성공의 딜레마조차도 더 이상은 난제가 되지 못한다.

멤버들이 화사하게 웃고 있는 하늘색 앨범커버가 인상적이었던 전작 〈An Urbanite〉의 여유는 힘을 동반한 강성의 에너지로 바뀌었다. 이 같은 기조는 대금을 구슬프게 불어가며 미선이와 효순이를 떠올리는 '꽃잎', 미국의 횡포를 꼬집는 '죽든지 말든지'에 나타난 심각한 사회성에 힘입어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붉은 감동을 떠올리는 '눈앞에서'도 강한 폭발력을 갖고 머리가 아닌 가슴에 호소한다. 갈수록 탄탄해지는 실력과 더불어 모두가 기대하는 마음의 소리를 자신감 있게 뽑아냈다. 누구나 거리낌없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한 유일 밴드로서의 면모는 여전하다.

이렇듯 가슴 벅찬 대의(大義)를 내세우며 질주하지만 그 안에는 자유가 공존한다. 공연장에서 열심히 부르던 'Good life'가 심상치 않다 했더니 결국 '박하사탕 2'에서 드렁큰 타이거와 손을 잡았다. 멤버들의 고단했던 과거를 투박한 랩으로 설파하는 'YB 스토리', 기타리스트 토미 기타(Tomi Kita)의 깜짝 참여가 의외인 'Magical dragon'에서도 이 같은 분방함은 살아있다. 인도네시아 밴드 슬랭크(Slank)와 함께 한 'Shout Asia'도 두말하면 잔소리. 여기에 새로이 가세한 객원 DJ 선댄스(Sundance)가 강철에 기름칠하듯 밴드에 매끄러운 디지털 감성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멋지게 지지고 볶는다해도 대중들과의 호흡이 없다면 결국 허전할 밖에. 월드컵 때 이미 인연을 맺었던 히트 작곡가 윤일상의 원조가 바로 이런 측면이다. 산타나(Santana)의 라틴 록과 이승철의 '오늘도 난', 그리고 스카 감성이 한데 결합된 듯한 '자유'가 흥겹게 판을 키운다. 윤일상이 손을 본 또 하나의 곡 '잊을께'는 그간 히트곡들의 취약점이었던 답답함과 촌스러움까지 벗어 던졌다. 이미 공인 그룹이 되어버린 윤밴의 훌륭한 자구책. 변절이니 하는 어린애 같은 소견을 들이밀 계제가 아니다.

이제 윤도현 밴드는 크나큰 부담을 잠재우고 화려하게 비상할 준비를 마쳤다. 성공을 이용하는 똑똑함보단 더 나은 미래로 가는 현명함을 택했다. 스스로 자신들을 반석 같은 위치로 밀어 올려 간다. 덧없는 대중적인 인기야 언젠가는 시들겠지만 영속의 기억으로 가는 길은 그 가운데 있다. 마치 들국화가 그랬듯이. 윤도현 밴드는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

-수록곡-
1. 꽃잎
2. YB 스토리
3. 사랑할거야
4. 자유
5. 박하사탕 2 (feat. 드렁큰 타이거)
6. magical dragon
7. 친구
8. who am I
9. 죽든지 말든지
10. 눈앞에서
11. 잊을게
12. Shout Asia
13. magical dragon (Sundance Mix)
이석원(slpain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