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금슬금 피어올라 20~30대 여성들에게서 메말랐던 보호본능마저 끄집어내는 권정열의 목소리는 참으로 섹시하다. 잔잔한 윤철종의 연주는 얄미울 만큼 설렘을 북돋는다. 10센치는 이것저것 대놓고 바라지 않는다. 툭툭 던지면서 다 아는 듯 보이지만 은근한 흘림을 보이며 자극한다. 적당히 고삐를 풀고 당길 줄 아는 능력은 그들만의 청춘 가득한 연애에서 나오는 것인가.
‘세련된 찌질함’은 십센치만의 개성을 충분히 드러낸다. ‘Fine thank you and you?’에서 남자는 이미 지나간 연인에게 소식을 전해 듣지만 헤어지던 날 이전의 시공간에서 아직도 한참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나는 여기에 머물지만 잘 지낸다며 재차 말함이 이별 후 더욱 애틋하고 공허한 심정을 표현해낸다. 그럼에도 철부지 같던 연애시절을 돌아보며 이제는 싱겁게 웃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노래는 온기를 담은 올드 팝 사운드 위에서 씁쓸한 공감을 자아낸다.
찌질함 가운데 엉큼함까지 내비치는 대범함도 있다. ‘냄새나는 여자’에서는 간지러운 사운드에 졸릴 듯 말듯 섬세한 가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결국 풀썩 쓰러지고, 덥석 입 맞춘다. 전에 없던 댄스 리듬을 담아낸 ‘오늘밤에’는 십센치하면 떠오르는 고정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변화다. 아쉬움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윤철종의 내레이션은 특히 유머러스하다.
이어서 조심스런 연애에 촉촉한 단비를 내리는 ‘나의 꽃’이 달콤한 어법과 아름다움과 감성을 전한다. 흠모하는 누군가에게 수줍은 꽃잎을 떨어뜨리는 순수함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권정렬의 고적한 보컬이 구슬픈 소야곡을 떠올리게 하는 ‘한강의 작별’이 아코디언 선율로써 탱고풍 감성을 실어낸다.
예전과 사뭇 다른 다채로움으로 완숙미를 꾀하며 ‘아메리카노’의 그림자를 탈피하려한 의도를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예술과 외설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특유의 농염함도 그대로다. 예상 밖의 돌풍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회에 나섰다.
-수록곡-
1. 그대와 나
2. Fine thank you and you? [추천]
3. 한강의 작별
4. 냄새나는 여자 [추천]
5. 너의 꽃 [추천]
6. 고추잠자리
7. 오늘밤에 [추천]
8. 그러니까...
9. 마음
10. 이제.여기서.그만
11. Corona
12. 오늘밤에(Clean Ver.)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