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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 앨범 - Again
김범수
2005

by 신혜림

2005.02.01

김범수는 알앤비 가수다. 지금까지 그를 대표하던 음악들은 모두 흑인 음악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가요계에 불고 있는 리메이크 열풍을 타고 온 그의 다시 부르기 앨범은 거의 파격적이라고 할 만큼 많은 변화가 엿보인다. 선곡에서부터 잔잔한 플래티넘 발라드만을 고집했고 감정의 과잉보다는 절제가 어울리는 음악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석대로라면 김범수식의 알앤비 스타일로 소화해야 했음이 옳다. 하지만 그는 '원곡에 충실하자'를 모토로 삼고 자기 목소리를 최대한 죽였다. 분위기 조성을 위한 짧은 인트로를 지나 조관우의 '겨울이야기'가 김범수의 'Memory'로 변해서 들려질 때 우리가 살짝 당황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타이틀곡인 'Memory'만큼은 원곡의 흔적을 많이 지우고 편곡을 많이 가해 제법 새로운 느낌을 준다. 조관우의 버전이 겨울 분위기를 중요시한 윈터 송이었다면 'Memory'는 블루 무드를 더욱 강조해 애틋함을 자아내는 슬로우 발라드 넘버다. 그는 과거에 그가 밟아온 히트 공식에 따라 폭발적 가창력으로 그 슬픔을 극대화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최대한 목소리를 자제하며 애끓는 심정을 한층 효과적으로 방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Again>에 김범수의 진면목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특성을 죽인 것이 또 다른 새로운 특징을 낳은 것이다. 아마도 이전까지의 김범수 팬들은 그의 목소리가 이렇게 잔잔하고 감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곡인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는 그의 새로운 보이스가 빛을 발하는 곡이다.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귀를 감싸면서, 노래를 듣고 있다기보다는 정답게 담소를 나누는 기분을 선사한다. 그는 21세기형 가수가 쉽게 가질 수 없는 이 소박한 분위기를 확실하게 육화(肉化)하며 스스로를 재탄생시킨다.

그래서 <Again>은 전반적으로 원곡들보다 어쿠스틱하다.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에서는 신서사이저 소리를 없애고 유연하게 편곡했으며 이문세의 '오래된 사진처럼'도 더 조용하고 아련하게 만들었다. 기존 곡을 무조건적으로 따라한 것도 아니고 자기만의 스타일만을 고집하지도 않은 중용(中庸)의 미가 돋보인다.

사실 이은미의 '어떤 그리움'이나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 같은 경우는 아무리 노래를 잘하는 김범수라고 해도 그들의 관록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런 욕심은 없었던 듯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야무지게 소화하는 노련함을 발휘한다. 신승훈의 'I believe'나 토이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등은 처음부터 김범수를 위해 만든 곡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다.

김범수는 자신이 다시 부른 노래들을 그 시대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2005년의 감성 코드에 끼워맞춘 것이 아니라 8,90년대의 감성으로 자신이 회귀한 것이다. 덕분에 그는 억지로 문화재를 복원하려다 도리어 훼손하는 것과 같은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의 노래 소화력도 한 단계 발전하는 추가 수확도 거뒀다. 지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Again>은 벌써부터 그의 5집을 기다리게 하는 제대로 된 리메이크 앨범이다.

-수록곡-
1. Intro (작곡: 박인영)
2. Memory (작사: 하광훈 / 작곡: 하광훈)
3. 어떤 그리움 (오승은 / 임기훈)
4. 가려진 시간 사이로 (박주연 / 윤상)
5. 오래된 사진처럼 (유정연 / 유정연)
6. 눈이 와요 (김광진 / 김광진)
7. 1994년 어느 늦은 밤 (김현철 / 김동률)
8.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유희열 / 유희열)
9.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한경훈 / 한경훈)
10. I believe (양재선 / 김형석)
11. 처음 느낌 그대로 (이소라 / 김광진)
12.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김창기 / 김창기)

프로듀서: 황찬희
신혜림(snow-forget@hanmail.net)